본문 바로가기

여행길_해외

[초등 아이와 영국 여행] 준비하기 - 2편

영국 여행 준비 2번째 글입니다.
저는 아이와 여행을 좋아해서 성장 시기별로 어떻게 다녀볼까를 고민했어서 세계사 책도 읽고 여러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하지만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관심사 1순위가 아닌 이상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영국 여행 시 최소한으로 알고 가면 도움이 될 영국 이야기를 정리해 볼까 합니다.

 

※ 영국 국가 구성

영국 (United Kingdom)

정식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며, 약칭으로 브리튼이라고 한다.

 

입헌군주국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및 아일랜드섬 북부의 북아일랜드로 네 개의 구성국이 연합해 형성한 단일 국가. 수도는 런던이고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수도는 각각 에든버러, 카디프, 벨파스트이다.


국기


국장 (왕실 문장)

 

영국 국기의 구성 - 유니언 잭 (Union Jack)

영국의 국기는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성 게오르기우스 십자(흰 바탕에 그려진 붉은 십자),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성 안드레아 십자(파란 바탕에 그려진 흰 X자 모양의 십자),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성 파트리치오 십자(흰 바탕에 그려진 붉은 X자 모양의 십자)를 결합한 디자인이다.

 

잉글랜드
잉글랜드는 영국 역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영국(英國)이라는 명칭은 별칭인 잉글랜드에서 유래했다. 잉글랜드 왕국의 독자적인 역사는 1707년 연합법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통합하면서 구성국이 되었다.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의 수도는 에든버러이며, 영국 내에서 두 번째, 유럽에서 여섯 번째로 큰 금융도시이다. 또한 스코틀랜드 내 문화 중심지이며, 18세기 스코틀랜드를 유럽의 상업, 지식, 산업의 중심지로 만든 스코틀랜드 계몽주의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웨일스
1536년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8세가 제정한 웨일스법(1535-1542)에 의해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의해 영국으로 완전히 합병되었고 사법체계도 잉글랜드 중앙정부 치하에 통합되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잉글랜드와 차별화된 웨일스의 정치가 발달하게 된다. 1998년에는 웨일스 정부법에 의해 웨일스 의회가 설립되어 현재 다양한 위임 책무에 대한 권한을 수행하고 있다.
북아일랜드
아일랜드섬의 북동쪽에 위치한 영국의 일부로서, 남쪽과 서쪽으로 아일랜드 공화국과 개방된 국경을 공유한다. 1998년 북아일랜드법에 의해 설립된 북아일랜드 의회가 다양한 위임된 정책 사항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그 외의 분야는 영국 정부에 유보되어 있다.
 

 

※ 여행에서 꼭 알아야 할 영국의 왕과 시대

헨리 8세 (Henry VIII, 1491년 6월 28일 ~ 1547년 1월 28일)


16세기 잉글랜드 왕국 튜더 왕조의 절대군주이자 잉글랜드 해군의 아버지이다. 또한 두 번의 대승으로 북쪽의 숙적 스코틀랜드 왕국을 제압함으로써 훗날 브리튼 섬 통일의 기초를 닦았으며, 잉글랜드 국교회를 성립시켜 이후 잉글랜드 역사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귀족들을 거의 절멸시킨 장미 전쟁을 종식시키고 튜더 왕조를 개창한 헨리 7세의 차남으로 태어나 형 웨일스 공 아서의 죽음으로 왕좌에 올랐고, 여섯 번에 이르는 결혼과 이 과정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와 불화 끝에 잉글랜드 교회를 분리 독립시켰다. 이로 인해 잉글랜드 교회는 가톨릭과 분리되어 성공회로 발전하였다.
잉글랜드 국교회의 성립은 헨리 8세의 개인적 이유와 종교 개혁의 영향을 받았다. 헨리 8세는 수도원을 해체하고 이를 왕실과 민간의 재산으로 불하했다. 잉글랜드의 종교 개혁은 종교적 사건일 뿐만 아니라 매우 정치적인 사건이었다. 
헨리 8세는 교황 수위권에 대항하기 위해 왕권신수설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전제군주를 강화했다. 로마의 교황청으로 가던 교회의 수입 상당수가 왕실에 귀속됨으로써 헨리 8세는 유래없는 자금을 확보하고 해군과 교육에 힘쓰면서 영국 제국의 틀을 만들어 놓았다.

 

헨리 8세의 부인

  이름 결혼 전 결과 자녀
1 아라곤의 카탈리나 아서 튜더의 부인 이혼 메리 1세
2 앤 불린 카탈리나의 시녀 참수 엘리자베스 1세
3 제인 시모어 앤 불린의 시녀 사망 에드워드 6세
4 클레베의 앤   이혼  
5 캐서린 하워드 클레베의 앤의 시녀 참수  
6 캐서린 파      

 

헨리8세의 자녀 3명 모두 왕이 되었다. 

에드워드 6세 튜더 왕조 3대 국왕. 9세에 즉위했으나 15세에 요절했다.
메리 1세 블러디 메리(Bloody Mary)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튜더 왕조 4대 국왕. 카톨릭 복귀 정책을 피며 성공회 사제와 신자 약 300명을 화형시킴.
엘리자베스 1세 평생 미혼이었기 때문에 처녀 여왕(Virgin Queen)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한다. 그녀의 치세를 의미하는 엘리자베스 시대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등이 이끈 영국 희곡의 번영기이자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선봉으로 스페인 제국의 무적함대를 완전히 격파하는 위용을 떨치던 시대이다. 동인도회사 설립 등 여러 치적을 남겨 훗날 잉글랜드가 대영제국으로 발돋움하는 기반을 마련한 군주로 평가받는다. 근대 초기 잉글랜드의 강국화를 상징하며 남긴 업적이 커 대중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 국가의 형태와 지금의 영국을 만드는 발판이 된 튜더 왕조에 대한 이야기를 알면 런던탑, 옥스포드의 크라이스트 처치, 그리니치 해양 박물관, 심지어 칵테일까지~ 훨씬 깨알 같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